무작정 퇴사하기로 했다.
3년 동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모든 사람에게 가장 진심으로 대했던 곳이었다.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한동안 직장동료들의 점심시간은 시끄러웠다.
퇴사하게 된 계기, 통보했을 때 대표님의 반응,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동료들은 흥미롭다는 듯 내게 질문을 쏟아냈지만, 나는 어떤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출근날.
회사에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는데,
모든 직원이 모여 퇴사하는 사람에게 한마디씩 덕담을 해주는 것이었다.
매번 떠나는 동료에게 덕담을 건내는 입장이었는데, 내 차례가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동료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들이 쏟아져 너무 오글거렸다.
처음에는 간질거려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마지막쯤이 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섭섭함, 슬픔, 아쉬움의 감정보다는
혼자 고스란히 떠안았던 응어리가 사라지는 후련함이었다.
'수고했다'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회사에 다니면서 단 한번도 나 자신을 우선순위로 둔 적이 없었다.
물론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내 성격상, 그리고 맡고 있는 업무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유난히 많이 겪었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누군가에게 폭언을 듣기도 하고,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수치스럽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억울함과 울분이 목 끝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죄송하다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던 날들.
그 순간의 공간, 분위기, 목소리, 표정...
모든 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일상과 휴식에서 불쑥 나타나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미련스러운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가 당해서 다행이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동료가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 남의 돈 버는게 어디 쉽니. 사회 생활은 그런거야.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니?'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군말없이 모든 걸 받아내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몸도 마음도 탈이 났다.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인생에서 영원히 잊고 싶은 순간들.
도저히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지지 않던 경험들.
더는 나 자신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서른한 살에 '퇴사'라는 선택을 했다.
누군가는 나의 선택을 걱정했고,
누군가는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멋진 커리어를 성취한 것도 아니지만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놓쳤던 나의 마음을 찾으며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분노, 슬픔, 우울, 무기력의 감정들을 마주하는 날이 점차 사라졌다.
매일 크고 작은 도전에 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선택에 실패는 없다. 다시 선택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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